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인리히 크라이페 (문단 편집) ===== 크레타 섬 주둔군 시절 및 납치 ===== 재편성 이후 고급지휘관 예비역으로 지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가 1944년 3월 크라이페는 ~~운명의~~ 크레타 섬 주둔군이었던 22강하사단의 사단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당시 크레타 섬은 [[크레타 섬 전투]]의 막심한 피해 끝에 점령에 성공하였으나 [[크레타 섬]]의 험난한 산악지형상 완전히 통제권을 얻은 상태는 아니였다. 그만큼 파르티잔 활동이 격렬했는데 전임 22강하사단장이었던 [[프리드리히-빌헬름 뮐러|프리드리히빌헬름 뮐러]]는 주둔군 사령관으로 재직하면서 파르티잔 토벌을 위해서 무자비한 살육을 벌여 "크레타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얻은 상태였다. 당시 영국군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롬멜의 북아프리카 군단을 어느 정도 제압한 상태였고 다음 계획으로 상륙작전을 입안중이었다. 당연히 목표는 프랑스 서부 해안이었으나 기만책의 차원에서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가까운 크레타 섬을 노리고 있다는 의도를 보여만 주고 싶어 했다. 당시 영국군 특수 작전국(SOE)는 롬멜을 비롯한 독일 국방군의 유능한 장군들을 납치하는 작전을 여러차례 수행한 바 있었고 크레타에서 학살을 벌인 [[프리드리히-빌헬름 뮐러|프리드리히빌헬름 뮐러]] 또한 그 목표 중에 있었다. 기만책이 필요했던 [[윈스턴 처칠]]에게 SOE의 크레타 주둔군 사령관 납치 작전은 효과적인 기만책이었고 결국 이를 작전을 허락하였다. 하지만 정작 뮐러는 1944년 2월에 고급지휘관 예비역으로 독일로 돌아간 상태였고 이미 하인리히 크라이페가 부임한 상태였다. SOE 요원 2명과 크레타인 2명으로 구성된 납치팀은 먼저 항공기를 통해 몰래 강하하는 방법으로 침투하였으나 SOE요원 1명만 성공하였고 나머지는 기상악화로 인해서 실패하였다. 결국 리비아 동부연안에서 잠수정을 통해 크레타 남부의 절벽해안에 상륙하여 SOE 납치팀과 크레타 레지스탕스가 접선할 수 있었다. 크라이페의 동선 및 습관 등의 정보를 크레타 레지스탕스로부터 획득한 SOE 납치팀은 크라이페가 예하 부대 지휘부를 이동하는 지점을 골라서 독일군 헌병으로 위장한 채 매복하였다. 4월 26일, 늦은 저녁시간 [[이라클리온]]으로 향하는 삼거리에서 매복해있던 SOE 납치팀은 멀리서 장군 전용차량이 오는 것을 확인하고 급습작전을 개시하였다. 차량 안에는 운전병[* 운전병도 처음에는 같이 납치되었으나 비밀누설을 우려한 크레타 레지스탕스에 의해서 살해당한다.]과 크라이페 2명이 전부였으며 장군 차량이었던 덕에 쉽게 크라이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맨날 다니는 길이었던 탓에 크라이페는 경계를 늦추고 있었던 터라 6명[* 현지 레지스탕스들도 일부 참여함]의 무장병력에 무방비로 체포되었다. 크라이페의 이름이 떡하니 씌여진 장군 관용차를 이용하였기에 20여개소의 초소를 검문검색없이 무사히 지나칠 수 있었다. 일정한 지점에 이르러 크레타 섬의 남부에서 접선하기로 했기 때문에 크레타섬 남부의 거친 산악지대를 통과해야한 했다. 차를 폐기한 납치팀과 크라이페는 거친 산악지대를 돌파하여 장장 20여일에 동안 이동하였다. 도중에 당시 49살의 ~~상대적으로 노구인~~ 크라이페는 바위산 지대를 통과하면서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납치팀의 회고에서는 크라이페가 일부러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밍기적거린다라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결국에 납치팀은 크라이페를 잘 보살펴가면서 접선지점에 도착하여 고속정을 타고 이집트로 무사히 복귀할 수 있었다. 다소 황당하게 포로가된 크라이페는 이집트에서 영국군에 포로로 넘어갔으며 이후 종전이 끝날때까지 캐나다의 고위 포로 수용소에서 지내야 했다. 영국군은 크라이페를 심문하였는데 성격은 비교적 활발하고 강건하며, 나치즘에 딱히 경도된 경향은 없다라는 결과를 쓰기도 하였다. 크라이페 납치작전은 SOE가 성공한 유일한 장군 납치 작전이었다. 하지만 다소 함정인 것은 정작 크레타 섬에는 뮐러가 돌아와서 또 학살을 벌였다는 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